죽은 자 위에 세워진 산 자의 터전 - 아미동 비석마을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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구한말 부산항 개항 이후 일본인들이 공동묘지를 조성하고

 일제시대에는 이 곳에 화장장을 만들면서 화장골로도 불렸다 합니다.


화장장에서 일본인들이 제사를 지내고 나서 까치밥으로 남겨 놓은 음식들때문에 까치가 많이 모여들어 

"까치고개"라는 이름을 지금도 사용하고 있는  곳입니다.


광복 후 일본인들이 떠나고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내려온 피난민들이 자리잡은 터전.

죽은 자의 무덤위에 산자의 터를 짓고, 

죽은 자를 기리기 위한 비석으로 석축을 쌓고, 주춧돌로 쓰고 골목을 오르내리는 계단이 된 곳입니다.


고개 바로 아래에서 학창생활을 보냈는데도 이 곳을 모르다가 20여년이 지나간 후에야 처음 돌아 봅니다.




감천문화마을에서 고개를 넘어 조금 내려오면 좁다란 골목길이 보입니다.




소화 16년 (1941)년에 묻힌 일본인의 묘비인 듯 합니다.

후손들은 소화 20 년의 일을 알았을까요?



집 지을 터전이 된 석축의 재료로 쓰인 비석과 상석




비문의 흔적이 희미해지는 동안 몇 번을 옮겨졌을까요?




宮島 朝太郞 (미야지마 오타로)의 후손들은 조상의 유골을 들고 떠났을까요?

정성으로 만들었던 묘비가 누워 산자에게도 휴식을 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요?




지난 세월에 비문은 흔적만 있습니다.




1980년대로 돌아 온 듯한 풍경




판자집은 세월의 무게에 더 이상 버티지 못하는 가 봅니다.




비석이 가로 누워 있는 이곳이 한 때는 어린아이들의 놀이터가 되고 이웃들이 만나서 담소를 나누는 곳이었겠지요.




한 때는 생존을 위한 가장 중요한 장소가 아니었을까요.




시간이 멈춘건지 ? 아니면 지나가 버린건지 ?






마을 아래로 보이는 부산의 도심




마을의 전망대에서 보이는 부산의 풍경입니다.

용두산공원의 부산타워와 부산항대교가 보이고 저 멀리에는 오륙도가 보입니다.




"부산광역시 서구 아미동 1가 10번지"는 정말 많이 변했군요.


골목을 다니면서 70년대 후반과 80년대의 기억을 되새겨 보는 시간을 가졌던 듯 합니다.